나는 지금 필리핀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필리핀에 온 지 딱 일주일이 지났어. 내가 필리핀에 온 이유는 제목에도 적었듯 ‘어학연수’를 해보자는 용기를 냈거든. 지금 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의 세부에 위치한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 이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지만 한국인 입학을 20%로 제한하고 있어서 한국인 외에도 일본, 대만, 몽골, 러시아, 아랍,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영어를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 서른 넘어 시작한 어학연수 "
누군가에겐 늦을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빠를지도 모를 나이 33살.
33살인 나는 회사를 퇴사하고 어학연수를 하기로 했어. ‘갭이어’에 대해 이야기했던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싶었고, 더 다양한 삶의 모양을 만나고 경험하며 나와 맞는 조각을 찾아보려고 해.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어. 아마도 내년 2월엔 캐나다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지. 그 전에 내가 그곳에서 캐나다의 언어인 영어로 일을 구하고 좋은 경험을 하려면 무엇보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넘어 궁극적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꼭 필요한 단계일 거야.
내가 2년간 디지털 노마드를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건 영어를 잘하면 그만큼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거야. 당연히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의 규모부터 차이가 나니까 말이야. 간단한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부업으로 ‘한국어 튜터링’이라는 외국인에게 화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면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은 세계 각국에 존재할 테고 그 수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일지도 몰라. 영어라는 도구를 손에 얻으면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에 더 많이 도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조금 더 영어와 가까워지기 위해 어학연수를 시작했어.
30대에 팔자 좋게 어학연수라니 흔한 이야기는 아니지. 이곳에 오니 역시나 20대의 친구들이 많았어. 아마도 88% 정도는 20대인 것 같아 하지만 놀랍게도 30대부터 그 이상까지도 다양한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어. 어학원에 온 둘째 날 만난 한 한국인 분은 나이가 46살이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나이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영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공부하고 있어. 늦었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어학원 선생님께 들었는데 작년에는 83세의 나이에도 수업을 들으러 온 시니어 학생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83살에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인데 33살이라고 못 할 게 뭐 있겠어? 안 그래?
" 입학 레벨테스트를 1등 할 줄이야? "
입학하자마자 2시간 동안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에 대한 시험을 봤어. 지금 다니고 있는 어학원에는 매주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사진을 게시하곤 하는데 이번 주 월요일에 그 게시판에 나의 얼굴이 게시됐어. (레벨테스트후 눌러쓴 모자를 급하게 벗고 찍은 사진이라 너무 순수한 나의 얼굴은 살며시 못 본 체해주길) .지난주에 입학해 레벨테스트를 본 31명 중에 내가 1등이라는 거야. 늦깎이 학생이니까 뒤처지지 않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학교 다니면서도 받아본 적 없는 1등이라니! 글쎄 그룹수업에서는 박수갈채도 받았지뭐야? 무모하게 시작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행운처럼 기분 좋은 추억이 하나 생겨버렸어.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점수를 받은 건 아니야. 비슷비슷하게 1~2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1등’이라는 글자는 나의 새로운 시작에 용기를 한스푼 넣어 나의 도전을 더 반짝반짝해 보이게 만들어 주었어. 잘하고 있다고, 그저 지금처럼만 즐기며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
" 여름청춘의 어학원 입학 VLOG "
나의 어학원 입학과정이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참고해줘 😊
" 늦은 나이란 없어 "
혹시 이 말 들어본 적 있어? “지금 나이에 될 수 없는 건 키즈모델 밖에는 없다”라는 말. 우스갯소리지만 요즘 내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문장이야. 이 어학원에서 나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분께 물어보면 아마 ‘내가 네 나이에 왔으면 지금보다 더 잘했을 텐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나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무척이나 꼰대같지만 같은 마음을 품고 있거든. 지금 내가 꿈꾸는 일이 키즈모델이 아닌 한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나이가 들어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아 조금은 더디더라도 말이야. 그럼에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무엇이든 되어 있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