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인가, 한국의 봄이 이토록 짧았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인가 싶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나는 썩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사실 내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날씨는 핑계고, 아침에 일어나도 급하게 출근 준비할 필요가 없는 ‘퇴사자’이기 때문이야. 지난주 금요일 나는 4년 반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퇴사를 했어. 2016년 8월,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뀐 이후 처음으로 이직할 회사를 구하지 않은 오롯한 퇴사를 했어.
물론 이전에도 말했듯이 겁이 많은 나는 갭이어와 영어 공부를 위한 계획을 세워둔 퇴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회사를 준비하지 않고 퇴사할 용기를 낸 내 자신이 스스로도 놀랍고, 조금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은 다 잘도 버티는 회사를 왜 버티지 못하나 싶은 작은 자책을 이따금 씩 하기도 하면서 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어.
‘나를 찾기 위한 퇴사’
나는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정의를 내릴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기 위해 퇴사하기로 했어.
나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 불러서라기보다는 '어떻게 나와 같은 나이에 저렇게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목표가 뚜렷할까? '라는 그들의 심지같이 곧은 단단함이 너무 부러웠어.
나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기필코 단 한 번도 없었어. '취업이 잘된다는 간호학과에 가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아무런 고민도 없이 간호학과를 목표로 공부했어. 재수까지 했지만 서울에 있는 간호학과에 갈 성적이 되지 못했고, 다시 공부할 용기 또한 없었어. 게다가 재수까지 했는데 본가를 떠나 지방의 간호학과가 있는 학교로 내려갈 자신도 없어서 성적에 맞춰 예상에도 없던 공대에 입학해 버렸어. 학교에 다니면서도 이 길은 나에게 꼭 맞는 옷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도 나는 과감히 트랙에서 내려올 용기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린 거야.
사실 두려웠던 것 같아.
재수까지 하면서 선택한 길이 잘못된 길이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한 걸까 싶어서 말이야. 한 살, 두 살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던 스무살 초반의 나는 여기서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실패한 인생이 될 줄 알았던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스물세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그렇게 나는 스물세 살에 가졌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른세 살이 되었어. 여전히 '이 길이 나와 맞는 걸까?'라는 물음을 품은 채 말이야.
그래서 이제서야,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나를 찾는 시간을 갖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어 .
" 퇴사 그리고 응원 "
팀장님께 미팅을 신청하고 퇴사를 이야기하던 날, 매번 이직할 회사를 두고 퇴사를 말하다가 처음으로 공부하기 위해 퇴사하겠다고 말하려니 어떻게 말해야 할까 조금 긴장이 됐어. 이 나이에 공부하겠다거나, 나를 찾겠다거나 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가늠이 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생각보다 퇴사를 말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평온했어.
“어디 다른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거야?”
“아니요. 퇴사하고 공부를 좀 하려고 해요.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 이유면 붙잡아도 붙잡히지도 않겠네? 휴직을 고려해 보는 건 어때? ”
“이미 어학원 결제도 해놓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받아 놓은 상태라… 아마도 마음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미팅을 하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어. 수없이 많은 시간을 고민했지만 입밖으로 꺼내놓는 시간은 고작 10분이 채 지나지도 않는 시간에 끝이나 버린 거야. 이직이 아니니 퇴사 일정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도 없었고 모든 퇴사 과정은 순조롭게 흘러갔어. 퇴사를 말한 시점부터 한 달 동안 근무하기로 날짜를 정하고 난 뒤에는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어. 2~3주간은 기존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와 인수인계를 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일주일 동안은 그동안 일하면서 같이 합을 맞추었던 사람들과 커피챗을 하며 안녕을 고하는 시간을 가졌어.
그리고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았어.
같이 일했던 팀원들과의 송별회에서 잊지 못할 롤링 페이퍼를 받았고, 함께 오랜 기간 일한 기획자와도 편지를 주고받았어. 여러 편지들의 내용 중에 가장 좋았던 말들은
나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도 많이 웃는다는 것
오다가다 마주치면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해 주는 비타민 같은 사람이라는 것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가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준 응원처럼 지금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고 반짝반짝하게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해. 너무 힘들어서 무너지고 싶은 날에는 그들에게 살짝 기대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런 후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나를 응원해 주는 나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뚜벅뚜벅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이어가야지.
"끝 그리고 시작"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는 말은 ‘퇴사’를 맞이하는 상황에 꼭 맞는 문장인 것 같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상황을 거치면서 동료들과 끈끈한 우정이 생기고, 그리고 더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지만 이제는 회사 동료가 아닌 친구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것.
나는 ‘퇴사’라는 용기를 내며 이번에도 여럿의 친구들이 생겼어. 그리고 그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여정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미는 중이야.
그러니 너도 만약 이 편지를 읽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거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내가 뒤에서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