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냈어?

오래전부터 너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이다 드디어 용기 내 편지를 써보려고 해.

나는 어려서부터 끈기가 부족한 아이였어. 피아노 학원을 보내면 겨우 계이름을 외우고 어느 정도 노래다운 음계를 누를 수 있을 때쯤엔 학원가기 싫다며 울어버렸고,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집에서 하는 학습지를 시작해서 히라가나를 외우고, 겨우 가타카나를 배우기 시작하면 어느새 지루해서 하품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꾸준히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뭘까, 내가 그나마 꾸준히 하는 건 뭘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깨달았어.

나는 작든 크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두려움이 적은 아이였던 거야.

마음먹으면 곧장 시작해 버리는 성격이라 가끔 친구들에게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시작을 잘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거든. 나의 이런 모습을 오래 지켜본 친구들은 시작이 망설여질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어.

사실 내가 고민을 들어주면서 해주는 일은 딱히 없어. 고민을 해결해 주지도, 정답을 알려주지도 못해. 겨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시작해 봐!’라는 말을 계속해 주는 것뿐이야.

우리는 이 한마디로도 큰 용기를 얻곤 하니까 말이야.

사실 우리는 딱 그 정도 말만 필요했던 걸지도 몰라.

이 편지를 통해 내가 했던 작고 소소한 도전과 용기를 낸 순간들을 이야기해 줄게.

아마 다음 편지부터는 ‘오늘은 이런 용기를 냈어’로 시작되는 편지를 받게 될 거야.

이 편지로 네가 용기를 내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랄게.

혹시 너도 시작을 망설이는 것들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해줘도 좋아 :)

나는 지금 갭이어(Gap Year)를 앞두고 있어. 갭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길어서 다음에 자세히 편지에 담아볼게 :)
갭이어의 시작은 ‘필리핀 어학연수’로 정하고 다음 달 22일엔 나는 필리핀에서의 첫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거야. 주위 사람들은 퇴사하고 쉬는 게 걱정되지 않는지 물어보며 부러운 듯 안쓰러운 듯한 시선을 보내곤 해.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오랜시간 고민했고,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기에 나의 선택을 믿어.

내가 이렇게 나의 선택을 믿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하기까지, 나에게도 수많은 처음이 있었어.

첫 혼자 여행을 떠난 날, 처음으로 스쿠터를 타본 날, 처음으로 10m 아래 물속으로 프리다이빙을 한 날 등 수없이 많은 처음을 통과했어. 도전적인 성향이 있는 나에게도 처음은 쉽지 않았어. 그럼에도 내가 또 다른 처음을 맞이하는 이유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경험하지 못한다는 게 시작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어

‘ 눈 딱 감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

나의 모든 처음은 이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어. 공대생답게 항상 머릿속으로 알고리즘(algorithm)을 시작하는데 첫 질문은 항상 ‘이걸 하면 내가 큰 걸 잃는가?’ 라고 나에게 되물어. 그럼 생각보다 그렇게 큰 손해는 없을 것 같은 거야. 그럼 ‘No’ . 그 다음 질문은 ‘이걸 경험해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나는 언제나 ‘Yes’였어. 그 외에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머릿속이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어. ‘죽이 되든 밥이 되는 해보자.’ 남들이 경험해 보고 하는 말들 말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어.

‘ 그렇게 탄생한 경험 중독자 ‘